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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을 초월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은?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근대 중국역사에서 항일전쟁은 수많은 중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갖게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쟁통에서도 사랑이 피어나기도 하는데요, 오늘 소개할 인생스토리의 주인공이 바로 항일전쟁에서 피어난 사랑의 주인공입니다. 그녀는 일본의 간호사였는데, 중국인 장군과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았고, 그 아이들이 성장해서 중국에서도 이름을 날린 사람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누구일까요?
이 여성의 이름은 사토오 야노보리(佐藤屋登)라고 합니다. 그녀는 원래 일본에서 일하는 간호사였는데, 병원에서 일하다가 생각지도 않게 일본 국내 군사건설에서 필요로하는 간호사로 강제로 차출되어 군대 주둔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업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 중국으로 파견되었고, 일본 주중 대사관의 의무요원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운명에 변곡점이 된 것은 이번 해외파견이었습니다.
1913년, 사관학교의 교장인 쟝바이리(蒋百里)가 한 차례 충돌에서 학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총을 쏴서 자살하려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북양 정부(北洋政府) 내부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사건이었습니다. 비록 이 사건으로 인해 쟝바이리가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큰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때, 쟝바이리가 하루빨리 완쾌되기 위해 위안스카이는 일본의 의료진을 투입하여 이 사건을 책임지고 치료하였습니다. 이때 뛰어난 능력의 사토오 야노보리는 이 의료진에 발탁되어 쟝바이리 치료의 간호사로 활동했습니다.
이 기간 중, 사토오 씨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쟝바이리의 상처는 조금씩 나아졌고, 그 섬세한 간호사에 대한 호감도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쟝바이리가 사토오 씨에게 구애하기 시작한 후,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나, 사토오씨는 일본인이고, 그녀는 스스로 언젠가는 일본에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은 감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쟝바이리의 청혼을 여러 차례 거절했습니다.
비록 거절하는 말을 들었지만, 쟝바이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사토오 씨가 일본에 돌아간 후에도 구애를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의 진심은 사토오 씨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녀의 부모님을 더욱 감동하게 하였습니다. 비록 딸을 먼 중국으로 시집보냈다고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오히려 딸을 쟝바이리에게 맡긴 것이 매우 안심된다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1914년 겨울, 쟝바이리는 사토오 야노보리와 정식으로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샤토오 야노보리는 쟝줘메이(蒋佐梅)로 이름을 바꾸고 중국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결혼 후 두 사람의 삶은 행복했고,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쟝줘메이는 중국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일본군의 항일행적도 그녀는 매우 물반스럽게 생각하였고, 그 때문에 본명보다 쟝줘메이라고 부르는 것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64년 동안 그녀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쟝바이리와 결혼 후, 딸 다섯을 낳았는데, 셋째 딸 쟝잉(蒋英)이 나중에 유명한 성악가로 활동하며 중국의 음악 인재들을 양성하였습니다. 쟝잉의 남편은 중국 과학연구에 크게 기여한 과학자 쳰쉐선(钱学森)입니다. 쟝잉과 쳰쉐선 부부도 중국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토오 야노보리 씨에게 중국이란, 자신의 이름을 쟝줘메이(蒋佐梅)로 개명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애정이 진심으로 느껴집니다. 쟝바이리와 결혼한 뒤 고향인 일본으로 한번도 돌아간 적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하니 그녀는 인생에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시대적으로 중국과 일본간에 전쟁이 벌어졌던 암울한 시기였지만, 국적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남았습니다.
<참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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