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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설적인 타짜 '요건운(尧建云)'의 인생스토리

hanyuku 2020. 6. 2.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중국에서 억만 명 가까이를 이긴 강서(江西)의 도박왕이자 전설적인 타짜가 있다는데요, 그는 도박으로 일확천금을 얻고 아름다운 아내와 가정까지 꾸렸지만 나중에는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기사로 보도된 그의 영화같은 인생스토리에 대해 한번 알아볼까요?

 


강서의 도박왕 요건운(尧建云)

 

 

 

 

1963년, 요건운은 강서성 무주시(江西抚州)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모두 공기업에서 일하던 그는 어릴때부터 외할머니의 손에 길러졌는데요, 외할머니의 총애를 받으며 자라난 그는 장난에 빠져 하루 종일 말썽을 피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네 군데 학교에서 쫓겨나기까지 하여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었던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아들이 고생 끝에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남창(南昌)의 건설현장에 보내 일하게 했습니다.

 

공사 현장 생활이 지루하기도 하고, 밤에는 일거리가 없기 때문에 동료들과 함께 카드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요건운은 이것을 보고만 있어도 손이 근질근질 하기도 했고 반쯤은 떠밀리다시피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한번 도박을 시작하고 나서 요건운은 거의 모든 판에서 졌는데, 그는 언젠가는 다 이기고 말것이라며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였습니다. 그렇지만 18세 때, 요건운은 도박에서 처참하게 패했고, 한 줄기 희망마저 꺾였습니다. 도박으로 빚까지 진 이때, 그의 건설현장 친구가 "도박도 배워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었고, 요건운은 150위안을 옷 속에 감춰 도박을 배우러 떠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요건운은 강서 지하 도박세계의 유명한 "천왕(千王)" 양홍광(杨红光)을 알게 되었고, 양홍광의 수단에 통달한 후, 그는 도박은 사기극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건운은 어디에서 넘어지든 그곳에서부터 다시 일어나겠다고 결심했고, 그가 한때 도박에서 잃었던 것도 도박판에서 다시 이겨서 되찾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한 달 동안 요건운은 양홍광 옆에서 차를 들고 물을 나르며 따라다녔고, 그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배우려는 강박에 못 이겨 양홍광은 자신이 카드 노름을 할때 뒤에 서 있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 후, 요건운은 양홍광의 뒤에 서서 1년 동안 도박을 하는 동안의 동작을 자세히 관찰한 끝에 편법으로 속이는 방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게 되었고, 어떻게 빈 곳에서 패를 만들어내고, 패를 숨기고, 패를 바꿔치기하는지 배웠습니다. 그 후, 수 개월 동안의 연락 끝에 요건운이 점차 마음을 얻자 자신만의 새로운 수법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도박장을 종횡무진하며 명성이 자자해지다

 

 

 

자신만의 사기 수법이 계속 성숙해짐에 따라 요건운은 곧 청출어람이 되었고, 양홍광보다 기술 수준이 훨씬 뛰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야심차게 스승에게 하산준비를 알렸고, 양홍광은 스승으로서 강호는 험악하다는 말 한마디를 그에게 남겨주었습니다.

 

 

출사 후, 요건훈은 곧 50만 위안의 돈을 모았고, 그는 온 종일 지하 도박장에 섞여 다니며 자신이 개발한 수법으로 곧 50만 위안을 백만 위안, 100만 위안을 또 배로 늘렸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요건운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돼지 죽이기(杀猪)"라는 도박판인데, 이런 도박판의 계략은 일반적으로 고용주가 판을 만들고, 협력하는 사격수들이 함께 몰아가서 목표 고객을 정한 후 고용주가 사격수들이 목표에 가까이 가게 배열한 후 사격수들이 일부러 계속 져주면서 목표물이 끊임없이 돈을 번다는 느낌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때, '돼지 죽이기'의 순간이 오면 비로소 고용주가 사격수와 연합하여 목표물이 가진 엄청난 액수의 도박판에 참여하는 수법입니다.

 

 

'강서 도박왕'으로 불리는 요건운은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었고, 수많은 '돼지 죽이기 판'에 초대되어 다른 사람의 돈을 착취하고, 많은 가정을 파괴하는 동시에, 그의 재산도 억대 가까이 불어났습니다. 그는 표준적인 부자 생활을 하며 별장에 머물거나 비싼 차를 몰고 다녔고, 뿐만 아니라 젋고 예쁜 여대생을 아내로 맞아 곧 사랑스러운 딸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불과 30도 안 된 나이에 남들이 평생 일해도 따라가기 힘든 부와 즐거움을 얻은 것입니다.

 

 

 

 

사기 수법이 드러나자, 마음을 고쳐먹고 손을 씻다

 

 

1993년 10월, 요건운은 주해(珠海)의 한 어선 주인의 요청으로 몇 명의 유능한 수하와 백여 만 위안의 현금을 가지고 도박판에 갔습니다. 배가 공해로 벗어난 후, 요건운은 자신이 데리고 간 수하들이 일찌감치 매수당해 자신의 사기 수법을 털어놓았다는 사실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도박판에서 요건운이 행한 사기 수법은 현장에서 잡혔고, 그는 도망칠 틈도 없이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가 깨어난 후, 그는 이미 홍콩의 한 병원에 누워 있었습니다. 병원의 병상 위에 그는 두 다리가 무릎까지 절단되었고,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 세 개가 비스듬히 잘려나간 그는 거의 자신의 삶을 돌볼 수 없는 폐인이 되어버렸습니다.

 

 

두 다리와 손가락 세 개는 도박판에 가담한 후 남의 돈을 갈취한 그가 치러야 할 엄청난 대가였습니다. 그 후 5년 동안 요건운은 재기하지 못했고, 하루 종일 이것저것 의심하고 한때 그의 도박판에서 재산을 날렸던 피해자들이 찾아와 복수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이런 사람구실 못하는 남편을 마주하게 된 요건운의 아내는 곧 이혼하고 아이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2000년, 요건운은 더이상 도박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고, 장애인 가무단을 만들어 투어를 하며 다시 포커를 잡았지만, 이제는 도박이 아니라 마술쇼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무단의 공연이 점점 더 인기를 끌자 요건운은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여러차례 텔레비전에도 출연하였고, 인터뷰에도 응하여 그의 인생사가 방송을 타기도 했습니다.

 

 

요건운은 회개할 마음이 생기자 방송사의 요청에 응해 TV 화면에 출연하여 도박판의 덫에서 빠져나오고 도박을 하지 말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도박왕'으로 불리며 명성을 날렸지만, 중국 최초의 '반(反) 도박 전도사'가 된 그는 그 동안 마음이 들뜨고 뒤숭숭하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2018년 8월 30일, 55세를 일기로 요건운은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시신은 저장성 닝보시(浙江宁波)의 한 어수선한 셋집의 한 작은 방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손가락 세 개, 두 다리, 하나의 가정, 한 도박왕의 인생은 이렇게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누구나 도박꾼의 마음을 가지고는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 정도는 다르겠지요. 도박의 경우, 카지노에서 보면 욕심을 부리면서 계속 이기려고만 하지만, 실제로 인생은 도박과 같아서 잃는 게 더 많고, 잃는 게 있다면 또 한편으로는 얻는 것도 있는 법입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hare?context=%7B%22nid%22%3A%22news_10090729846102963614%22%2C%22ssid%22%3A%22%22%7D&pageTyp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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