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yuku
중국 여성 인생 스토리 #1-미스 홍콩 진 출신 주링링(朱玲玲) 본문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오늘은 중국 여성 인생 스토리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로 찾아왔습니다.
오늘 이 시리즈의 첫번째 주인공은, 20살에 권세가에 시집가서 아들 셋을 낳고, 47세에 먼저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한 후, 50세에는 200억 위안 자산을 가진 부자에게 다시 시집간 여인입니다. 벌써부터 어떤 여인인지 궁금해지네요~
훠치강과 궈징징에 대해 말하자면 중국인들에게는 낯설지 않은데요, 그들은 결혼 후 쭉 저조해졌습니다. TV 프로그램에서의 두 사람은 매우 금슬이 좋았었고, 훠치강 역시도 "공처가"였기 때문에 팬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사실, 부잣집 도련님인 훠치강이 이런 덕목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어머니이자, 궈징징의 시어머니인 "미스홍콩 진" 주링링 덕분입니다.
1958년 미얀마에서 태어난 주링링은, 유복한 가정환경 덕분에 어려서부터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9세 때에는 가족들을 따라 홍콩에 왔는데, 처음 홍콩에 와서는 적응을 잘 못하였지만, 언어에 재능이 있어서 광동어와 영어를 익히며 현지 생활에 녹아들게 되었죠.
소녀시절 주링링은 외모가 예쁘고, 길쭉길쭉한 몸매로 이성들의 눈길을 끌었지만, 당시 학업에만 전념하며 연애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느덧 열아홉이 된 주링링은 홍콩 미인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훈훈한 미모와 재치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대회가 끝나고, '총 우승'과 '카메라 상'을 거머쥔 그녀는 두 개의 상을 받은 첫 번째 참가자였고, 이후 주링링이 홍콩인의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고, 전설적인 그녀 인생의 서막을 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인대회 이후 연예계로 뛰어들었지만, 그녀는 드라마 <매리관칠칠> 한 편만 출연한 후, 훠젼팅(霍震霆)의 열렬한 구애를 받아들여, 1978년 9월 20일 주링링은 20세의 나이로 훠젼팅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만난지 9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훠씨 집안이 주링링을 매우 아껴서, 그 둘이 결혼했을 때 1000만 홍콩달러의 축의금을 주었고, 결혼식에는 350 테이블을 차려서 1인당 2000위안(약 1만 7000원)짜리 결혼식을 준비했고, 총 4천여 명의 내로라하는 하객들이 참석하여 그들의 결혼을 축하했습니다.
이 돈은 지금은 일반적으로 돈 있는 집에서 결혼식에 충분히 들일 수 있는 금액이겠지만, 40여년 전만 해도 천문학적 액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당시로서는 적잖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딸의 결혼에 대해 주링링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걱정하여 반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혼 후 주링링이 공익을 위해 자선행사에 열을 올리고, 시아버지에게도 예쁨받는 며느리여서, 주요 행사에 자주 참석하여 국가 원수들이나 외국 사절들에게도 내보였다고 합니다.
훠씨 부자의 마음을 가장 기쁘게 했던 것은, 주링링이 결혼 후 몇 년 동안 걸출한 세 아들을 낳아준 것이었습니다. 큰 아들은 훠치강(霍启刚), 둘째 아들은 훠치산(霍启山), 막내 아들은 훠치런(霍启仁)으로, 모두 장성한 이후에는 상계, 정계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링링이 운도 좋고 잘 나가고, 안정된 권세있는 집안으로 시집간 것에 부러워했지만, 이때 주링링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만큼 즐겁지 않았습니다.
2000년도에 훠졍팅은 "두집살림"을 한 것으로 주링링을 화나게 했습니다. 주링링이 훠졍팅에게 증거를 찾아냈을때 처음에는 인정을 하지 않았지만, 주링링의 끈질긴 추궁에 "남자는 말야, 이런 일 정도는 하게 마련이지"하는 한 마디를 던졌다고 합니다.
이런 남편의 답변에 주링링은 홧김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서 홍콩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시아버지 훠잉동(霍英东)은 중재에 나섰고, 주링링은 침착함을 되찾고나서 시아버지의 권유로 다시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한번 갈등이 생기면 다시 회복될 가능성은 희박한 것이죠. 주링링은 집에 들어가긴 했지만 남편과 5년간 별거 생활을 했습니다.
그녀를 더욱 화나게 한 것은, 그녀가 연회에 참석할때 사용한 모든 장신구들은 모두 차용 증서를 작성하게 하고, 다 쓴 후에는 즉시 돌려놓아야 하며, 집에서 전업주부가 되어야 하고 밖에서 일을 할 수 없게 한 것입니다.
주링링은 일찍이 이러한 집안의 규율에 반항하려는 시도로, 영국에 가게를 차리고 남편에게 집에서 독립하기를 건의했지만, 남편이 노발대발하며 "집에서 가만히 있으면서 아이들이나 잘 키워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타고난 개성이 활발한 부잣집 아가씨 출신인 주링링은 당연히 견딜 수 없었고, 그 후 2005년 47세의 주링링은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하고 집을 떠났습니다.
훠씨 집안의 장남이 이혼한 일은 홍콩권에서는 엄청난 일이었지만, 훠씨 가문은 모두 침묵을 지켰습니다. 이혼 후 주링링은 자신의 사업을 하며, 여성의 건강을 위하고, 공익을 위해 자선단체를 만들었으며, 사진 예술을 배우는 등등 자신만의 자유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훠씨 집안과의 관계는 매우 좋게 유지해갔는데요,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녀는 수양딸의 신분으로 장례식에 참석했고, 큰 아들인 훠치강(霍启刚)과 궈징징(郭晶晶)의 세기의 결혼식을 그녀가 질서정연하게 지휘했습니다.
2008년 주링링이 50세가 되었을때, 10세 연상인 라이언 그룹 회장 뤄캉루이(罗康瑞)와 다시 결혼하는 등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양가의 체면을 위해 그들의 결혼식은 싱가포르에서 조용히 거행되었습니다. 결혼 당일 뤄캉루이는 홍콩항에 부인 신분을 신고하고 200억짜리 집을 공유하며 다정한 모습으로 쇼핑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현재 62세인 주링링은 여전히 "꽃처럼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수식할 수 있는데요, 주링링은 진정한 용자라 할 수 있습니다. 권세 있는 집안의 부인으로 살기보다는, 그곳을 떠나기 위해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큰 아들 내외인 훠치강과 궈징징이 아들을 낳은 뒤로 이젠 할머니가 된 주링링은 그야말로 인생의 승자가 아닐까요?
'China n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여성 인생 스토리 #2-중국에서 가장 못생긴 '추녀' 슈퍼모델 뤼옌(吕燕) (0) | 2020.03.12 |
---|---|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중국의 학교 개학시기는? (0) | 2020.03.10 |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근원은 어디일까? (0) | 2020.03.06 |
500억 위안을 주고도 사형을 면치못한 중국의 한 억만장자 (0) | 2020.03.05 |
큰 아들은 청화대, 둘째는 북경대에 입학시킨 중국의 한 어머니의 남다른 교육방법 (0) | 2020.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