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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미모의 대기만성형 실력파 여배우, 위웨산(于月仙)의 인생스토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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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미모의 대기만성형 실력파 여배우, 위웨산(于月仙)의 인생스토리

hanyuku 2021. 9. 24.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8월 9일, 중국에서 "사대각(谢大脚)" 역을 맡아 연기했던 여배우가 교통사고로 인해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당시의 그녀는 상당한 미인이었는데, 대기만성형 연기자로서 이렇게 성공하게 되기까지 여간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고 합니다.

 

 

 

 

 

그녀는 중국의 자오번산(赵本山)이라는 유명한 배우의 처제라고 하는데요, 요 몇년 동안 어떠한 커리어를 쌓아왔는지, 그녀는 어떻게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었는지 소개한 기사가 있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1970년, 위웨산(于月仙)은 네이멍구 츠펑시(内蒙古赤峰市)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해는 그녀의 사촌언니 마리쥐안(马丽娟)이 5살이었고, 자오번산은 막 13세가 되었던 해라고 합니다. 당시 자오번산은 미래에 그의 운명이 이 두 여자아이와 긴밀하게 연결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위웨산에게는 두 명의 여동생과 한 명의 남동생이 있었는데, 그녀는 큰언니로서 집안일도 도와야 하고, 동생들도 돌봐야 했기 때문에 매우 고생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가정은 남아선호가 극심하였고, 일가족이 남동생을 보물처럼 여겨서 위웨산과 여동생들에게는 적지않은 냉대와 구타를 행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그녀가 가장 즐거웠던 일은 사촌 언니인 마리쥐안네 집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쥐안은 무용을 배우고 있었고, 언니는 평극(评剧) 배우였으며, 오빠는 베이징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명절에 다 같이 모여서 장기자랑을 하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서 위웨산은 아연실색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덕분에 위웨산도 춤과 연기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츠펑시에서 가장 큰 곡예단에서 단원 모집을 하였습니다. 위웨산은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았는데, 뜻밖에도 정말로 뽑히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사촌 언니들처럼 자신도 문예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 소식을 알게 된 위웨산의 아버지는 "여자애가 이렇게 나가서 하는게 나중에 뭐 좋은일이 있겠냐? 당장 그만두고, 정 하려거든,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가라!" 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합니다.

 

 

그녀는 부모님 몰래 소년궁(少年宫)에 가서 춤을 배워서 예술계 학교에 가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매번 시험 전에 아버지 손에 붙잡혀 집에 끌려가게 되었고,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위웨산의 아버지는 그녀를 교사가 되게 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중등학교를 시험친 후, 위웨산에게 츠펑 제1직업학교 유치원 교사(赤峰第一职业中专学幼师)를 공부하도록 하게 했습니다.

 

 

 

 

 

이 전공은 졸업 후에 선생님이 될 수 있고, 노래와 춤을 배울 수도 있었는데요, 집에서 원하는 것을 만족시키면서 취향에 맞게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습니다.

 

 

워낙 태도가 좋았던 덕분에, 위웨산은 졸업 후 학교에 남아 교사로 일할 수 있게 되었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안정적인 직장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위웨산은 마음 속으로 만족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녀는 줄곧 마음 속에서 문예의 꿈을 계속 생각하다가, 곧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

 

 

선생님으로 일하던 시절, 위웨산은 주변 동료들로부터 대학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부러워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중앙희극학원(中央戏剧学院) 입학 요강을 보았고, 한번 가보기로 했습니다.

 

 

 

 

 

아버지가 반대할깨봐 그녀는 몰래 시험 공부를 하고, 차가 지나다니는 다리 밑에서 성악을 연습하였고, 숲속에서 동작을 연습하였고, 사람이 없는 화장실에 숨어서 연기를 연습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술과 시험을 보러 가는 날, 그녀는 새벽 3시 기차를 타고 퉁랴오(通辽)에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기차가 연착되는 바람에 그녀가 도착했을땐, 이미 모든 시험이 끝난 후였습니다.

 

 

위웨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용기를 내어 시험장 문을 열고 들어가 선생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올해 22세이니 제발 시험 한번만 보게 해주세요! 만약 시험을 못 친다면, 저는 죽어도 밖에 나가지 않을 겁니다."

 

 

면접을 보던 선생님은 그녀의 끈기에 감동하여 그녀에게 기회를 주었는데, 뜻밖에도 그녀가 아주 뛰어난 기량을 보였고, 그 덕분에 그녀는 시험을 본 전공에 합격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문화 수업 시험을 준비하느라 위웨산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 그녀가 근무하던 학교의 교장은 그녀를 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일부러 그녀를 접수실(收发室)로 보내어 대문을 지켜보게 하였습니다.

 

 

학교 경비실의 노인도 그녀를 난처하게 하였는데요, 그녀에게 가서 석탄을 날라오라고 시켰던 것이었지요. 그녀는 온종일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콧구멍은 온통 새까만 석탄재로 뒤덮일 정도로 석탄을 날라야 했습니다.

 

 

시험에 신청했을때, 그녀가 보는 시험의 수험자 명단이 동결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녀의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고는 그녀의 뺨을 몇 대 때리며 심하게 욕하고 분통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위웨산은 이에 굴하지 않고, 큰이모와 이모부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고, 결국 어렵사리 시험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교사들은 합격 통지서를 직접 위웨산에게 전달하여서, 다른 사람들에게 걸려 그녀의 입학이 안 되는 일도 막았습니다.

 

 

그러던 중, 1992년 22세의 나이에 드디어 중앙희극학원에 합격하여 대학에 진학하는 꿈을 이루게 된 위웨산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을 이루어내고 기뻐하였습니다.

 

 

그 해, 자오본산은 CCTV에서 춘완(春晚) 공연을 하며 <아상유개가(我想有个家)>라는 소품을 공연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고나서 얼마 되지 않아, 35세의 자오본산은 27세의 마리쥐안과 정식으로 결혼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무대에서 공연하는 동료에서 연인으로, 그리고 부부에 이르렀고, 마침내 자신의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합격한 위웨산의 삶은 그녀가 기대했던 것만큼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3.

 

 

위웨산의 동생 위잉제(于英杰)는 8살때 병이 났는데요, 척추가 옆으로 굽는 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동생의 병을 고치기 위해, 집안에서는 저축한 돈의 상당 부분을 탕진했고, 대학에 진학한 위웨산도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고학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구하였고, 제작팀에 가서 말단 엑스트라를 하면서 돈을 버는등 매우 고생하였습니다.

 

 

다행히도 대학 시절에 그녀는 평생 사랑하며 묵묵히 그녀를 뒷바라지 해 준 남자 장쉐송(张学松)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대학 동기로 만나게 되었는데요, 장쉐송은 반장이었고, 위웨산은 부반장으로 지내며 서서히 정이 들어 연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졸업 후에도 두 사람의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서사골목(西四胡同)의 작은 단층집을 얻었고, 주워온 매트리스로 침대를 만들고, 종이를 여러개 씌워 협탁으로 썼으며, 비가 올 때는 천장에서 물이 새기도 하였습니다.

 

 

나중에 두 사람은 작은 창고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집주인이 꼭 이른 아침에 들어와 물건을 가져갔고, 그러한 날들을 보내며 두 사람은 매우 힘들게 살았습니다.

 

 

두 사람은 1998년, 텐진 인민예술극원(天津人民艺术剧院)으로 자리를 옮겼고, 공식적인 직장이 생겼습니다.

 

 

 

 

 

위웨산은 틈틈이 연기하며, 예쁜 미모의 여인 역을 맡아서 열연하였는데요,

예를 들면 <수호전>의 김취련(金翠莲), <인간조왕(人间灶王)>의 모부인(莫夫人) 등등이었습니다.

 

 

 

 

물론 가장 인상적인 역할은 역시 <서유기후전(西游记后传)>의 진오진(陈五真) 역이라고 합니다.

 

 

 

 

 

그 역할은 지옥에서 도망쳐 나온 악귀로, 요염하고 어여쁜 여인 역할이었는데, 당시 위웨산은 정말 아름다웠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위웨산이 이 '풍진(风尘)' 역을 맡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2000년에 그녀의 남동생은 난징에 가서 수술을 받으려고 하였는데, 수술비로 15만 위안이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15만 위안이면 천문학적인 액수였습니다.

 

 

돈을 모으기 위해 위웨산과 남편은 집을 꾸미려고 모아두었던 돈을 내놓았고, 그런 다음에 그녀는 진오진 역할을 맡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또한 친구들에게 이곳저곳 돈을 빌리러 가서 돈을 가까스로 긁어모아왔고, 동생의 병을 치료하는데 수술비를 댈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동생의 수술은 성공적이어서, 그는 보통 사람처럼 일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2년, 위웨산이 빚을 거의 다 갚았을때, 그녀는 벌써 32세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이 남자에게 맡겨야겠다고 느꼈고, 장쉐송과 결혼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수중에 저축한 돈으로 베이징에 작은 집을 샀고, 가족들을 모두 베이징으로 모셔오니, 드디어 생활이 궤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위웨산과 그녀의 남편도 아이를 낳을 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뜻밖에 생긴 기회 때문에 두 사람의 자녀 계획을 헝클어뜨리게 되었습니다.

 

 

4.

 

 

자오본산은 02년에 드라마 <류노근(刘老根)>으로 전국에 흥행 돌풍을 일으켰고, 그로써 소품 뿐만 아니라 드라마 기획도 일품임을 증명했습니다.

 

 

04년, 자오본산이 <마대수2(马大帅2)>를 찍기 시작하면서, 연기를 배운 내외종 사촌 여동생인 위웨산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이 드라마의 아녀(哑女) 역할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배역은 극 중에서 단지 11번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위웨산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제작진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05년, 위웨산은 아일랜드 연극 <성정(圣井>에서 남루한 행색의 구걸꾼 역을 맡았습니다.

 

 

 

 

 

자오본산은 마침 공연을 보러 갔었는데, 그는 이 역을 연기한 배우가 위웨산인 줄도 몰랐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장쉐송이 "저 주인공이 바로 그녀입니다! 배역에 더 잘 맞도록 기괴한 분장을 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연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자오본산은 위웨산의 연기에 반해 공연에 열중하여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연기가 끝난 뒤, 그는 "이전에는 그녀가 연기에서 눈을 뜨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연기가 정교할 줄은 몰랐다! 오늘부터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되었다!" 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했습니다.

 

 

사나흘 뒤, 위웨산은 자오본산으로부터 <향촌애정(乡村爱情)>의 사대각(谢大脚) 역할에 출연해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원래 그녀는 아이를 낳으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 계획을 미뤄놓는 것으로 결정하였으니, 분명히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었습니다.

 

 

이 역할을 잘 연기하기 위해, 그녀는 농촌으로 달려가 생활을 직접 체험하였고, 살을 20여 근을 찌우고, 피부를 검게 그을렸습니다.

 

 

평소 37 사이즈의 신발을 신던 그녀는 사대각의 40 사이즈에 적응하기 위해, 안에 솜을 듬뿍 넣고 발 뒤꿈치가 다 닳도록 걸어다녔습니다.

 

 

빨간 장갑은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였고, 자신이 입을 신발과 옷도 정성껏 찾아냈다고 합니다.

 

 

 

 

 

<향촌애정>은 방송 이후, 중국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는데요, 사대각은 실제로 농촌에 가면 있을 법한 아낙네 역할을 제대로 표현해냈습니다. 억척스러우면서도 착하고 사랑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대각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죠.

 

 

 

 

 

36세의 위웨산은 드디어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정말 대기만성형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5.

 

 

유명해진 위웨산은 커리어는 점점 더 발전하였지만, 그녀의 유일한 아쉬움은 그녀가 아이를 낳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동생에게 많은 정성을 쏟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녀는 남동생을 데리고 공익활동에도 참가하였고, 결혼 준비도 시켜주었으며, 자오본산의 언론사에 입사하게 하여 동생이 커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마침내 스스로 일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비록 아이를 낳지는 않았지만, 남편 장쉐송은 그녀에게 넘치듯 사랑해주었고, sns 상에서도 두 사람의 달달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향촌애정13>이 상영되었고, 그녀는 <이상조요중국(理想照耀中国)>에서 살인(萨仁) 역을 맡아서 스크린을 누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8월 9일, 새벽 3시경, 네이멍구에서 촬영을 하던 위웨산이 탄 SUV 차량이 길 위의 낙타 2마리와 충돌하였습니다.

 

 

차 안에는 4명이 타고 있었는데요, 모두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고, 위웨산은 조수석 뒤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다른 세 사람은 부상을 치료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정말 가슴아프게도, 그렇게 열심히 살았고, 뒤늦게 빛을 보았는데, 그녀는 51세에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네요.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uper?context=%7B%22nid%22%3A%22news_9336536578186544012%22%7D&n_type=-1&p_fro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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