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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임금 직장을 버리고 귀농하여 성공한 징치(景奇)의 인생 스토리

hanyuku 2021. 9. 8.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직업은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귀천이 없다고 하지요. 예전에 중국 베이징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양돈업에 뛰어들어 돼지를 키워서 팔고 그것으로 성공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현재 칭화대 석사를 졸업하고 연봉 80만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을 포기하고 시골로 돌아가 양을 기른 다는 이야기는 이상할 것도 없게 들립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은 그 사람의 부모에게는 왜 번듯한 직장과 대도시에서의 삶을 놔두고 외딴 시골로 돌아가 창업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다가올 수 있지요.

 

 

 

 

 

오늘 살펴볼 기사의 주인공도 이러한 결정을 내리고 시골로 돌아간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는 줄곧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처음엔 농장을 어떻게 운영할지, 어린 동물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 손해를 봤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쩌다가 이런 결정을 내리고 시골로 들어간 것일까요? 그리고 현재 그의 농장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일하면서 칭화대에 합격하다

 

 

1976년, 허난성 핑딩샨시 예현(河南省平顶山市叶县)에서 태어난 징치(景奇)는 시골에서 자란 아이로, 그에게는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는 부모가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그는 일찍 철이 들었고,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징치는 베이징의 한 회사에 입사하였고, 입사 후에도 일과 병행하며 끊임없이 노력하여 공부한 끝에 칭화대 석사과정에 합격하여 졸업후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노력으로, 징치는 베이징에서 80만 위안의 고액 연봉을 받으며,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도 인민대학 대학원생이었고, 두 사람 모두 열심히 일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은 농촌 어느 마을에서 대학생이 한 명 나오기도 쉽지 않았던 때였지만, 징치는 시골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연봉 80만 위안짜리 직업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양만 키우다

 

 

징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때에는 자신이 이곳에 속해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루 종일 사무실 안에서 일하는 것이 그가 원하던 삶인가 생각하게 되었죠. 그래서 2014년, 그는 직장을 그만둔 뒤 고향으로 돌아가 축양장(养殖场)을 차리기로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의 푸른 산을 지키고, 마을 주민들이 효율적인 농업을 할 수 있도록 유기농 상품을 만들어서 도시 곳곳을 차지하겠다는 목표를 이미 세워놓았습니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은 건강한 고기를 먹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징치의 부모는 아들의 결정을 알고 강하게 반대했지만, 오랫동안 그의 결정을 지지해준 사람은 그의 아내뿐이었습니다.

 

 

 

 

 

징치도 물러서지 않고, 거래처나 지인들에게 매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창업 이상을 알리고 파트너나 투자자를 찾았습니다.

 

 

천천히 모든 것들이 좋은 방향으로 변해갔고, 그들은 적합한 장소와 산림으로 둘러싸인 곳을 찾았습니다. 예현 샤리향 요우팡촌(叶县夏李乡油坊村)의 따이구췐쯔란촌(稻谷全自然村)은 매우 이상적인 축양장 지역이었습니다.

 

 

징치는 투자후 자신의 축양장을 계획하고, 우물을 파고, 천막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간단한 일처럼 보이는 이런 것들은 모두 징치가 스스로 직접 해야 했는데,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난 후, 그는 첫번째 아기 양과 병아리 100여 마리를 사들였습니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게 순조롭게 흘러가지만은 않는 법이죠. 갑자기 큰 가뭄이 예현에 들었고, 농작물 피해는 물론이고, 키우던 병아리 조차도 현지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이듬해 여름, 현지에서는 백 년에 한 번 볼까말까 한 우박을 만났고, 축양장의 모든 물건이 부서졌습니다. 비록 양떼가 모두 폐사하진 않았지만, 동물을 놓아둔 막사가 모두 파손되어 버렸죠. 그래서 이번 우박으로 30여만 위안을 잃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용감하게 다른 축양장을 찾아 현지 양식 전문가들을 불러 자신의 축양장을 개선하였고, 1년도 안 되어 새로 설계한 막사를 새로 짓기 시작했습니다.

 

 

 

 

징치는 이미 두 번의 천재지변을 겪으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천재지변 외에도 역병이 발생하면 동물들이 죽기 십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았고, 한의사를 불러 약초를 사용하여 동물들을 건강하게 했습니다.

 

 

기업 경영에 성공한 뒤, 징치는 배운 지식과 경험을 살려 현지 주민들도 부를 쌓을 수 있도록 나서서 돕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현지 농민들이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도와죽고, 인터넷을 통해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을 위해 동물을 과학적으로 기르는 법을 가르치고, 사료와 방역물품을 일괄 구매하여 회사와 현지 농가, 그리고 농민들이 서로 윈윈하며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였습니다. 그래서 현지 농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로 하였습니다.

 

 

징치는 판매 경로에 온라인 판매를 구축하였는데, 직접 제품을 배달해주어서 중간 상인 단계를 거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편리하고 빠르고 위생적으로 고객에게 제품을 전달할 수 있었으며, 육질이 신선하고 전국에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방역 절차도 원천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징치는 또한, 인근 마을 주민들이 재배한 옥수수를 매입하여 양 사료로 사용함으로써 많은 농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해주었고, 더 이상 고향을 등지지 않고도 농민들이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1000여 명의 빈곤층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도와준 징치는 2017년도 허난성 10대 3농 인물 표창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는 "나는 칭화대 출신으로서, 더 많은 고향 어르신들을 이끌고 하루 빨리 샤오캉 생활(小康生活, 부유한 생활)을 하게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골에서의 생활 리듬이 과거 몇 년과는 많이 다른 것에 만족하고, 큰 도시에서의 생활도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도시에서의 격동적인 생활 리듬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시골의 동물들을 키우면서 맡게되는 향토적인 냄새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징치의 부모는 아들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보고난 후, 자연스럽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농장에 가서 일을 도와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디에서든 사람은 빛을 발할 수 있는데요, 도시든 농촌이든 상관없이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징치는 농촌에서 자랐지만, 학업을 마친 뒤,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가 이렇게 고향의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는 것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https://mbd.baidu.com/newspage/data/landingsuper?context=%7B%22nid%22%3A%22news_9508512733680465997%22%7D&n_type=-1&p_fro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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