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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장 예쁜 매니저"라는 훠원시(霍汶希)의 인생 스토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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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장 예쁜 매니저"라는 훠원시(霍汶希)의 인생 스토리

hanyuku 2022. 4. 27. 08:00

 

안녕하세요 한어고입니다^^

 

 

2011년, 훠원시(霍汶希)는 남자친구와 헤어지자마자 자신이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때 그녀의 나이가 이미 39세였기에 출산을 망설였지만, 셰팅펑(谢霆锋)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낳아라, 평생 책임져줄게!"

 

 

훠원시하면 "가장 예쁜 매니저"라고 불릴 정도라는데요, 그녀는 키가 170cm이고, 피부가 희고 얼굴이 아름다워서 웬만한 많은 여자 스타들보다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토록 빼어난 비주얼이라면, 자신의 외모로도 스타가 되고도 남았을텐데, 왜 실력에 의지하는 걸까요?

 

 

훠원시는 홍콩 태생으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일찍 학교를 그만두고, 비즈니스 분야에 뛰어들어 판매원이 되어 매일매일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하이힐을 신고 12시간을 서 있으면 나중엔 허리가 뻐근하고 다리엔 쥐가 날 정도가 되었죠.

 

 

그녀는 평범하고 힘든게 싫어서 모델 오디션을 보러갔고, 아름다운 비주얼과 몸매 덕분에 무난히 뽑혔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델 업계는 젊음과 매력을 무기로 돈을 벌어 살아가는 한때의 직업이기 때문에, 자신의 커리어를 연장하기 위해서 훠원시는 TV제작회사(电视制作公司)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녀는 보조, 시장 보급에서 시작하여, 제작자, 매니저까지 해냈습니다.

 

 

경력을 쌓은 훠원시는 이직하여 페이투 레코드(飞图唱片)사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페이투 레코드의 도련님인 예총런(叶崇仁)이 그녀에게 열렬히 구애하였고, 그녀가 머뭇거리자 예총런은 우치리(吴绮莉)에게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얼마 후, 페이투 레코드는 부실 경영으로 도산하게 되었고, "잉황(英皇)"의 양셔우청(杨受成) 사장이 이 회사를 전부 인수하여 "잉황 엔터테인먼트(英皇娱乐)"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훠원시는 공교롭게도 잉황 엔터테인먼트의 원로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총명하고 유능하여, 양 사장에게 중책을 위임받게 되었고, 회사의 첫 번째 매니저를 맡았습니다.

 

 

잉황 엔터테인먼트의 첫번째 연예인은 바로 "넷째 형(四哥)"이라 불리는 셰셴(谢贤)의 아들 셰팅펑(谢霆锋)이었죠.

 

 

 

 

 

 

1995년, <천왕지왕중출강호(千王之王重出江湖)>를 마친 넷째 형은 극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자신이 천왕본존(千王本尊)인줄 알고 마카오에서 도박을 하였으나, 완전히 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 해 동안 저축한 돈을 탕진하고, 몇 천만 외채를 빚지게 되었고, 빚쟁이들이 매일 그를 찾아가 독촉하는 나날을 보내며 말할 수 없이 고생하였지만, 체면상 친구에게 돈을 빌릴 면목이 없었습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어진 아내 디폴라(狄波拉)는 한껏 치장을 하고 밤 늦게 "도박왕(赌王)"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하룻밤이 지나자, 채권추심꾼들은 적지 않게 줄었고, 넷째 형과 디폴라 사이에도 금이 갔습니다. 머지 않아 두 사람은 이혼하게 되었죠.

 

 

비록 빚 추심은 잦아들었지만, 갚을 것은 갚아야 하기 때문에 넷째 형은 멀리 동경에서 공부하던 아들 셰팅펑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래서 아들로 하여금 "잉황"에서 20년 동안 장기 계약을 맺게 하였는데요, 일종의 '아들 팔이'를 한 셈이었습니다.

 

 

 

 

 

1996년, 16세의 셰팅펑이 정식으로 잉황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였을 때, 회사에서 그에게 배치해준 매니저가 바로 24세의 훠원시였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반항기였던 셰팅펑은 훠원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는데, 훠원시는 그 눈빛에 솜털이 곤두설정도로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셰팅펑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어린 가시나야, 보아하니 나이도 어려보이는데, 너 들어온지 얼마나 됐냐?"

 

 

훠원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들어온지 6년 됐다. 왜?"

 

 

셰팅펑은 듣고난 뒤 거들떠 볼 가치도 없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정식으로 여기 들어온지 16년이 되었으니, 내가 너한테 임시 사용기간을 줄 수 있지. 만약 네가 태도가 별로면 난 언제든지 당신을 들들 볶을테니 알아서 해!"

 

 

유명 스타 2세였던 셰팅펑은 어릴 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랐고, 파파라치들에게 몰래 카메라를 찍히며 각종 잡지, 주간지에 나왔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16세를 살아온 인생이 데뷔 16년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또한 잉황의 사장 양셔우청과 셰셴이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에 셰팅펑에 대한 양 사장의 애정도 대단했습니다.

 

 

 

 

 

이른바 총애를 믿고 교만을 떨었기 때문에, 셰팅펑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훠원시가 보기에 셰팅펑은 "미숙한" 꼬맹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녀는 이걸로 문제삼지 않고 그냥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아. 펑거(锋哥, 펑 형), 수고스럽겠지만 앞으로 잘 부탁해."

 

 

처음 두 사람이 같이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 셰팅펑은 호흡을 맞추지 못하여 훠원시와 자주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훠원시는 그에게 잘 꾸미고 멋도 부리라고 했지만, 그는 일부러 머리도 감지 않고 화장도 하지 않았죠.

 

 

훠원시가 그에게 춤을 배우게 하려고 하자, 그는 죽을지언정 절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동안 함께 지내면서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은 조금씩 허물어졌습니다.

 

 

당시 잉황 엔터테인먼트는 중국 본토 시장의 장밋빛 전망을 눈여겨 보았고, 셰팅펑에게 첫 번째 표준어 앨범 <사사니적애1999(谢谢你的爱1999)>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이 앨범으로 양안삼지(两岸三地)를 휩쓸며 큰 인기를 끌었고, 대만에서만 정품 10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올리며 연간 음반 판매 1위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19세의 셰팅펑은 큰 인기를 얻어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이듬해 춘완(春晚) 무대에 올랐을 정도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젊은 피였습니다.

 

 

그러나 큰 인기와 유명세에는 지저분한 일도 많이 뒤따르는 법이죠. 대박이 난 후 셰팅펑은 왕페이, 장바이즈(王菲、张柏芝)와 삼각 관계로 얽히고 설키다가 얼마 뒤 발생한 "딩 바오(顶 包)" 사건이 터지면서 이미지가 추락했고, 인기도 바닥까지 추락하였습니다.

 

 

위기 때 훠원시는 항상 그의 곁을 지키며 다시 그가 복귀할 수 있기를 바라며 계책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가 "공익활동" 방면에서 활동을 재개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하였고, 그가 다시 인기 정상으로 복귀하는데 일조하였습니다.

 

 

2008년이 되자, 또 "스냅사진(小照片)" 사건이 터졌고, 셰팅펑은 크게 상처를 입었으며, 또한 이미지에도 많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때에도 훠원시는 묵묵히 그의 곁에서 근심을 달래주며 무사히 위기를 넘겼습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 잘 표현하지 못하는 셰팅펑은 묵묵히 마음 속에 새겨두었습니다.

 

 

훠원시는 여러 해 동안 일에 몰두하느라 개인적인 감정 문제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이 되자 비로소 리젠 그룹(利建集团)의 회장 허단칭(贺丹青)과 서로 알게 되었고, 연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3년 열애 끝에 두 사람은 결별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훠원시는 자신이 전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이때, 훠원시는 이미 39세가 되어 나이가 많은 편이었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다시 아이를 갖기 힘들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남자친구와 헤어져 홀로 아이를 출산하면, 어찌 남의 비웃음을 사지 않겠습니까?

 

 

 

 

 

그녀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셰팅펑이 선뜻 나서주었습니다. "샤오시(小希),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하게 낳아라. 내가 너희 모녀 두 사람을 평생 책임져줄게!"

 

 

그가 그동안의 고마움을 드러내며 이렇게 지지해주자, 신념을 굳힌 훠원시는 해외 유학을 명분으로 반년 동안 휴가를 내고 싱가포르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딸을 낳았습니다.

 

 

비록 이름뿐인 아버지와 남편은 없지만, 모녀는 그래도 여전히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강대(强大)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어쩐지 그녀가 그렇게 많은 연예인들을 관장할 수 있었던 것은 확실히 그녀의 재능이나 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고기사>

因为谢霆锋一句话,让39岁的霍汶希果断生下孩子 (baidu.com)

 

因为谢霆锋一句话,让39岁的霍汶希果断生下孩子

2011年,霍汶希和男友刚分手,就发现自己怀孕了,此时她已经39岁,犹豫要不要生下来,谢霆锋却说:“不要怕,生下来吧,我养你们一辈子!” 提起霍汶希,她被称为“最漂亮的经纪人”,她

mbd.baid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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